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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Movie : 책과 영화

지구를 지켜라, 장준환 감독 데뷔작 : 관객수 7만 비운의 명작.

by 소기남 2020.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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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여자친구랑 집에서 TV를 보는데 IPTV 무료영화 목록에 '지구를 지켜라(2003)'가 있는 것을 보게됐다.

'이걸 본게 언제더라.. '

라는 추억을 곱씹으며 둘이 영화를 같이 보게 됐는데..

생각해보니 이걸 봤던게 아마 10년도 넘은 것 같다.

이 영화의 감독은 장준환으로 영화감독보다는 문소리 남편으로 오랜시간 더 유명했던 사람이다. (지금도 그럴지도..)

 

최근 집사부일체에서도 나온 이력이 있었다.

 

장준환 감독은 '지구를 지켜라'를 들고 영화계에 데뷔했고, 이번 포스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관객수 7만의 처참한 성적표를 받게 된다.

하지만 흥행성적과는 반대로 여러 영화제에서 '지구를 지켜라'의 작품성과 감독으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았다.

대한민국 영화대상, 춘사대상영화제,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 감독상을 휩쓸고, 모스크바 영화제 감독상과 로테르담 영화제 특별언급상까지 거머쥔 이후 가장 차기작이 기대되는 감독 중 하나로 손꼽혀 왔다. 

그러나 스폰서들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에 있는 신인감독이 재능만 있다고 뭐 어디 영화를 만들 수 있었겠는가..

 

 

그 후로 영화계에서 자취를 감추다시피 하다가 2013년도에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로 관객수 239만을 동원.

가까스로 손익분기점을 넘어 호흡기에 의존하여 버티다가 2017년도 영화 '1987'로 관객수 720만을 동원 드디어 한 방을 터트리는 쾌거를 이뤄낸다.

이야기가 다른데로 샜는데, 재능있는 감독이 만든 '지구를 지켜라'는 지금봐도 상당히 잘 만든 수작임에도 불구하고 흥행실패의 원인이 홍보에 있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바로 포스터가 너무 코믹스러웠다는건데.. 분명히 틀린 말은 아니다.

 

유쾌한 영화를 표방하는 듯한 포스터

 

이 영화를 직접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상당히 잔인하고 우울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포스터는 무슨 김씨표류기, 극한직업 같은 코믹한 이미지를 전달했으니 망할만도 하다.

어느 서양인이 국밥이 맛있다고 하는 말을 듣고 한국여행을 와서 주문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 국밥이 나왔는데 확실히 맛이 있어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주방장이 나와서 말하길..

"어이, 거기 서양총각. 그거 소 피를 끓여서 만든건데 맛있지?"

 

선지해장국, 맛은 괜찮은데.. 알고먹으면 좀 비위가 상한다.

 

이런거랑 비슷한거라고 볼 수 있다.

선지해장국은 맛은 괜찮지만.. 생각보다 못먹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먹을 순 있는데 잘 안넘어가더라..)

 

어느 기업의 총수인 강만식을 누군가 납치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상한 헬멧을 쓰고 있는 주인공 병구, 술취한 강만식을 그의 지하주차장에서 마주한다.

 

영화는 흥겨운 OST가 흘러나오며 유쾌하게 시작한다.

뭔가 코믹스러워보이는 배우 신하균과 윤문식의 젊은 시절 모습이 반갑다. (아 세월이여..)

아무튼, 병구는 술에 취해 집으로 들어가려는 강만식의 맨션 지하주차장에서 그를 납치하기로 하고..

 

여자친구 순이와 함께 강만식을 납치, 자신들의 집 지하감옥에 그를 가둔다.

 

그를 납치하여 높은 산꼭대기에 있는 자신들의 거처로 데리고가서 지하에 만들어놓은 감옥에 가둬버린다.

머리카락이 외계인들의 통신수단이라며 빡빡이로 만든 모습이 보인다.

 

병구는 물파스가 외계인에게 약점이라며 맨살을 벗겨 주입시켜야 한다고 알려준다.

 

사뭇진지하게 외계인임을 확신하는 병구.

그런데 코믹하게도 그들의 약점이 물파스이며, 그것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살갗을 벗겨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까진 꽤 웃으며 접근할 수 있는데..

영화를 보면 볼 수록..

 

어.. 어.. 진짜하는거야..?

 

고문의 강도가 점점 올라가는데 이게 생각보다 꽤 잔인하다.

영화관 데이트코스가 보편화된 한국에서 커플들은 유쾌한 영화를 보러 들어갔는데.. 피가 낭자하게 흩뿌려지는 그런 영화를 봤으니 악평이 오죽했으랴..

하지만 나는 포스터가 흥행실패에 기여한 부분이 크지만 영화내용도 너무 진보적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관통하는 주제가 최근에 개봉한 '조커(2019)'와도 어느정도 유사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억지로라도 웃어야 웃을 수 있는 삶을 사는 그.

 

조커의 주인공도 굉장히 불우했으며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해도 사회가 그걸 도와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미쳐가고 영화는 생각보다 잔인하며 피가 낭자하게 튄다.

개인적으로 배트맨 시리즈를 굉장히 좋아함에도 조커는 별로 재밌게 보지 않았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내가 알던 조커의 유쾌함과 여유넘침이 없던게 불만이었던 것 같더라.

 

내가 알고있던 유쾌하고 여유넘치는 조커.

 

이건 '지구를 지켜라'의 포스터를 보고 기대하고 갔던 나의 심리와 어느정도 비슷하게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조커의 흥행은 어땠는가?

지구를 지켜라와는 반대의 행보를 걷는 결과를 보여줬다.

제작비 대비 흥행은 미칠듯이 성공했고 망해가던 DC유니버스의 한줄기 빛을 내려준 광명과도 같았으며..

감독 토드필립스의 작품은 히어로 영화 최초로 오스카와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타는게 아니냐는 기대까지 갖게했다.(기생충이 있는데 어림없지 ㅎㅎ)

 

응, 안와

 

물론 조커의 흥행은 배트맨의 숙적으로 전세계 대중들에게 친숙해진 상태이며, 명성의 급이 달랐다는 유리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최근에 영화를 다시 본 내 입장에서 '지구를 지켜라'는 역시 수작의 면모다운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아마 이 영화를 어렸을 때 친구네 집에서 같이 봤던걸로 기억한다.

"뭐야~ 뭐 이런게 있어. 완전 골때리네 ㅎㅎ"

이러다가 마지막 결말에 머리를 망치로 맞은듯한 충격을 받았다.

지금이야 반전영화도 많고 흔한 플룻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당시에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영화에는 여러가지 주제가 내포되어 있지만 '누군가를 비춰지는 모습 그대로만 보고 있지 않는가?' 하는 그런 메세지를 던지고 있다.

 

 

만약 어느 날, 당신이 사랑하고 믿는 사람이 외계인이 존재한다고 하면 믿어줄 수 있는가?

심지어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당신과 아예 무관한 사람이라면 믿어줄 수 있는가?

누군가의 눈물, 누군가의 사투, 누군가의 사정을 우리는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영화를 다시 보고 나는 또 여러가지 생각에 잠겨야만 했다.

지구를 지켜라는 10년은 뒤에 나왔어야 할 영화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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