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영화 감독 중에서 봉준호를 가장 좋아한다.
이제 이런 말 하면 "응?? 봉준호를 너만 좋아하냐?" 이러실 분들이 많으실 것이다.
봉준호가 어젯자 (2020년 2월 10일)부로 황금종려상을 넘어 오스카와 아카데미까지 씹어먹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한국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한국영화를 안좋아한다고 하면 허세충, 애국심 없는 놈으로 치부하실 분들도 많을텐데, 같은 돈을 내고 보는 외국영화들에 비해 만족도가 낮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제작비 500억 영화 vs 10억 영화를 단순 비교했을 때 같은 가격이면 전자를 선택하는게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그래도 문화적, 정서적으로 맞는 한국영화가 우리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었겠지만, 내가 10~20대 시절 B급이라고 하기도 민망할 조폭영화들과 정치, 액션 영화들이 장악하게 되면서 나의 한국영화 기피현상은 극에 달했다.
나는 20대 초반부터 한국영화에 기대를 안하기로 했는데, 내가 군입대를 얼마 안남겨두고 심형래가 영화감독으로 데뷔.
한국영화 역사상 최초의 헐리웃을 겨냥한 3D 블록버스트 영화를 개봉한다고 한다.
그래픽은 정말 환상적이었고, 정부에서는 심형래를 '신지식인 1호'까지 등재 시키면서 애국심과 결합하여 전국민이 말 그대로 '국뽕'에 취하게 된다.
이런 한국 영화의 기념비적인 작품을 영화관에서 안 볼 수 있으랴...
그런데 하필 나의 군대 입대일 2007년 7월 10일, D-War 개봉일 8월 1일.
고작 20일의 차이로 난 이 영화를 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아직도 동반입대한 동생과 훈련소 침상에 누워서
'하.. 디워를 영화관에서 봤어야했는데.. 내 인생의 크나큰 아쉬움이다..'
하면서 한탄했던 기억까지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것은 신의 보살핌과도 같았다.)
그래서 디워는 재미있었을까?
나는 그렇게 한국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않게 되었고, 돈을 내고 보는 영화는 대부분 헐리웃 블록버스터 영화를 한정해서 보게 되었다.
제작비를 때려부은 블록버스터 영화는 스토리가 재미없어도 때려부수는 맛이라도 있어서 실패할 확률이 적다. ㅎㅎ
물론 중간중간 훌륭한 한국작품들도 많이 만났다. 하지만 이번편에서 이런 내용은 생략하도록 하자.
그러다 한국에 박찬욱이라는 걸출한 감독이 혜성같이 등장하게 된다.
박찬욱은 공동경비구역 JSA,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박쥐로 유명한 감독이다.
특히, 이 중에서 공동경비구역 JSA와 올드보이는 최고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단연 최고는 올드보이다. (개인적으로 JSA를 더 좋아하긴함)
올드보이는 한국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에 심사위원 대상을 받고 그 후로 친절한 금자씨와 박쥐가 칸 영화제에 오르내리게 된다.
그렇지만.. 박찬욱 감독은 친절한 금자씨를 마지막으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친절한 금자씨는 재밌게 보긴했지만, 박쥐에서 박찬욱 감독의 색깔은 너무 확고해져버린다.
영화가 너무 어렵다.
박찬욱 감독의 팬이나 영화에 조예가 깊다고 하는 분들은 나의 이런 말에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에게 솔직하게 묻고 싶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최근 고가에 거래되는 현대미술품들을 보고 벅찬 감동이 가슴 속에 진심으로 스며드는지 말이다.
박찬욱 감독의 재능은 매우 인정하지만 영화를 대중문화에서 소수들만 느낄 수 있는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훌륭한 작품이란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움직일 수 있는가' 로 판단된다 생각한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 문화를 강타한 귀여니의 소설을 욕하던 시절이 있었다.
실제로 그건 작품이라고 하기엔 지금봐도 수준이 낮게 보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술과 작품을 거창하게 포장하지 않는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나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귀여니의 소설은 나 이외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플란다스의 개로 데뷔한 감독이다.
처음에 이 작품을 제작하고 살인의 추억을 개봉할 당시에 제작사 사장은 '이게 성공하면 장을 지진다.'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괴물로 지금도 한국에 흔치않은 블록버스터를 성공시키고 상업성과 작품성을 모두 가진 감독으로 조명받게 된다.
설국열차 같은 경우는 관람평에는 큰 기대에 못미쳤지만, 그의 재능을 알아본 크리스 에반스가 공개오디션에 참석했던건 유명한 일화다.
설국열차에 대해 배우를 뽑기 위해 공개 오디션을 했는데, 한창 헐리웃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던 '크리스 에반스'가 자비를 들여서 오디션에 참석하게 된 것.
당시에는 진짜 좀 황당할 정도의 이슈였다.
'이런 유명배우가 왜 여기에..?'
작품으로 보는 봉준호 감독은 꽤 잔인한 사람이다.
영화에 대한 결말은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이번 주제에서는 생략하기로 하고..
옥자, 마더, 살인의 추억, 기생충 등.. 그의 작품들은 전부 희망을 주지 않는 그런 결말을 보여준다.
설국열차 같은 경우는 비교적 희망적이긴 하지만.. 쉽지만은 않은 그런 결말로 끝난다.
인생이 녹록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은걸까나.. 그의 작품은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삶을 고통을 적나라 하게 눈 앞에 가져다놓는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 주는 메세지는 쳐다보기 싫은 기분 나쁜걸 굳이 내 눈 앞에 두는 것과는 다르다.
시대는 계속 변화하고 있고 전반적으로 진보적인 형태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유니세프, 인간극장 등 미디어에 노출되기 전까지는 모르고 살고 있다.
그리고 이국종 교수 같은 사람들의 살신성인도 미디어에 노출되기전까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봉준호 감독은 잔인한 결말을 보여주는 사람이지만 우리 사회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곪아가고 있는 상처를 보여주는 역할을 해준다고 생각한다.
재밌게도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와 오스카 수상은 한국영화 역사가 시작한지 정확히 100년되는 해에 일어났다.
이 작품은 단순히 한국의 영화가 해외에서 상을 받았다, 인정받았다의 수준을 넘어서서 인류 영화 역사상 최고의 작품을 꼽을 때 당당히 상위권에 속할 수 있는 그런 수준의 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수상소감.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이후 많은 외국인들이 PC(정치적 올바름)에 기반한 이벤트성 수상이 아니냐는 반발도 있어왔다.
이건 어떤 느낌이냐하면.. 청룡영화제에서 우리보다 못한 후진국의 어떤 감독이 불쑥 나타나서 상을 휩쓸어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작품을 봤다면 절대 무시할 작품이 아니란걸 인정하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일인가.
그런데 봉준호의 위와 같은 수상소감은 현지인들에게
'우리처럼 헐리웃 영화를 보고 자라 훌륭하게 성장한 한 사람'으로 느끼게 만들기 충분했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완벽하게 아우르는 세계적인 거장 봉준호.
봉준호 감독의 영향력은 이제 한국을 넘어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이제 그가 세상의 어떠한 면을 비추게 될 지 세계인들과 함께 지켜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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